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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대한민국의 상고를 기각한다!


6•25전쟁 당시 누명을 쓴 채 군법회의에서 사형당한 청년이 있습니다. 사형수의 딸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2013년 법원은 재심을 열어 사형수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유족에게 1억 4,000여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2016년 갑자기 유족에게 준 보상금은 부당이득금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부의 부당이득금 환수소송이 시작됐습니다.

사형수의 딸은 정부와 육군본부, 그리고 검찰과 5년여에 걸친 지난한 소송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국가폭력’은 비단 광기 서린 전쟁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사형수의 딸은 국가폭력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 대한민국의 상고를 기각한다.

2021년 11월 25일. 대법원 민사2부에서 대한민국이 국민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환수소송’ 선고가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원고인 대한민국의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 비용을 원고가 부담하라는 짧은 주문을 읊고 재판을 마쳤습니다.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선고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재판에 패소하고, 국민이 승소하는 몇 안 되는 이례적인 선고이기도 했습니다.

피고석에 서 있던 사람, 군법회의 사형수 고 전재흥 씨의 딸 전미경 씨였습니다. 5년이나 끌었던 정부와 소송이 끝을 맺는 자리였습니다.

이 소송 때문에 전미경 씨는 충남 부여에 있는 본인의 집과 땅을 육군본부와 검찰로부터 가압류 당했고, 주변으로부터 이른바 ‘빨갱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소송을 마친 전 씨는 “70년간 목에 걸었던 올가미를 풀어냈던 느낌이고 하늘이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고 소회를 풀었습니다. 전 씨는 왜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송을 당해야 했었을까요?

■ 국가폭력에 희생된 청년

1951년 2월 21일, 육군본부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한 사내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습니다.

“죄인 전재흥은 1950년 7월 10일 좌익세력인 민청원으로서 괴뢰에 가담해 우익인사 나ㅇㅇ를 살해하고 기타 수인의 애국지사를 수사 괴뢰에 색출함으로써 이적행위를 감행했다. 이에 국방경비법 제32조, 이적행위에 대한 범죄사실이 인정돼 사형을 선고한다.”

당시 24살이던 청년 전재흥 씨는 군법회의 판결 12일 후 대전시 낭월동 13번지,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총살당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나 대통령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사형수의 딸 전미경 씨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를 착수했습니다.

규명 활동에 나선 위원회, 아쉽게도 증거나 자료가 부족해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며 ‘불능’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능 결정 이후 진실화해위원회가 충남 서천등기소 집단희생 사건을 조사하면서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군법회의에서 사형수 전재흥 씨가 살해했다는 우익인사 나모 씨. 나 씨가 전재흥 씨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좌익세력에 의해 서천등기소 창고에 감금된 뒤 방화로 숨졌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을 토대로 전미경 씨는 법원에 6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합니다.

법원은 2013년 전재흥 씨가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한 뒤 억지로 자백했고, 육군본부가 자백만으로 사형을 집행했다며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유족인 전미경 씨에게 민사 배상액 1억 6백만 원과 형사보상금 3,797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습니다.

■ 형사보상금은 부당이득?

재판은 이렇게 모두 끝을 맺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본부와 대전고등검찰청은 2016년 전재흥 씨의 유족인 전미경 씨가 받은 ‘형사보상금’이 중복 지급됐다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앞선 재판에서 원고석에 섰던 전미경 씨는 이제 피고석으로 자리를 옮겨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기나긴 소송전이 시작됐습니다.

원고인 대한민국, 지급한 형사보상금은 부당이득이라며 환수를 요구했고, 피고 측은 정당한 법 절차에 따라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급받은 것이라며 반박하는 논리가 충돌했습니다.
보상금을 줬다 뺐어야 하는 기이한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 보상금, 정부에 반환하라

2017년 2월 16일.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김병국 판사는 원고인 대한민국과 피고인 전미경 씨의 부당이득금 환수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립니다. 법원은 유족인 전미경 씨에게 원고인 대한민국에게 앞서 지급받은 형사보상금 3,797만 원 중 1,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합니다.

그러면서 원고 측에게는 1,500만 원의 금액에 대해 피고인 전 씨의 재산을 가집행, 그러니까 가압류 할 수 있다는 결정도 함께 내립니다.

1심 재판부는 망인이 불법구금으로 인한 손실과 정신적 고통으로 797만원, 사형집행으로 인한 보상금 3,000만 원의 형사보상금이 지급됐는데, 민사소송에서 인정된 위자료의 액수가 8,000만 원으로 형사보상금을 초과하는 게 명백하다고 봤습니다.

이중 불법구금에 의한 보상금 797만 원은 재산상 손실에 대한 보상금이 섞여 있는 만큼, 사형집행으로 인한 3,000만 원의 형사보상금 중 절반인 1,500만 원을 반환 범위라고 판시했습니다.

법원은 또, 판결에 따라 유족인 전미경 씨는 1,500만 원의 보상금을 반환해야 했고, 특히 선고일까지 민법에서 정한 연 5%, 그다음 날부터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법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15%의 비율로 지연손해금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전미경 씨 측 변호인은 항소했고, 육군본부와 대전고등검찰청은 전 씨의 집과 토지를 ‘가압류’했습니다.

■ 공정과 정의의 관념에서

2017년 8월 9일. 대전지방법원 제1민사부 이영화, 최윤영, 박형민 판사는 항소심 재판에서 원심의 판결을 뒤집고,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인 대한민국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당이득제도’는 재산상 이득이 법률상 원인을 결여할 경우 공평과 정의의 이념에 근거해 이득자에게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제도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형사보상 청구인이 청구 원인의 사실과 청구액을 적은 보상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은 검사와 청구인의 의견을 들은 후 결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검사가 형사보상 청구사건과 관련해 민사에서 확정판결에 따라 유족에게 형사보상법에 따른 보상금의 초과해 지급했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법원이 유족에게 형사보상금을 결정해 유족에게 지급했다고 말합니다.

법원은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공평과 정의의 관념에서 비추어 볼 때 피고가 확정된 형사보상 결정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수령한 것은 법률상 원인을 결여한 것으로서 부당이득으로 성립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 신의성실에 반하는 것

기나긴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법원은 1심에서 육군본부와 검찰의 손을, 항소심에선 유족인 전미경 씨의 손을 들어주는 엇갈린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았습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끝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법리검토를 거듭하며 4년여의 세월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민사2부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천대엽 대법관은 2021년 11월 25일 대한민국과 전미경 씨가 벌인 5년여의 소송에 대해 원고인 대한민국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당이득 반환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

재판부가 남긴 판결문은 이렇습니다.

“피고인 전미경은 원고인 대한민국을 상대로 부친인 전재흥의 불법구금과 사형집행에 대한 형사보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형사보상금을 결정해 확정해 3,979만 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원고인 대한민국은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손해배상금과 형사보상금의 이중지급을 금지하는데 피고인 전미경 씨가 손해배상금을 지급받고도, 형사보상금을 받은 것은 이중지급한 것이며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대한민국은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무렵 형사보상청구와 손해배상청구가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확정된 형사보상 결정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지급할 당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채 전액을 지급했다.

국가의 위법한 수사와 형의 집행으로 크나큰 고통과 피해를 본 피고가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인식하고, 지급받은 형사보상금을 이중지급이라는 이유로 반환한다면 국가의 손해배상 및 형사보상금 지급이 정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믿은 피고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대한민국의 부당이득 반환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 소송 언급은 적절치 않다

전미경 씨는 기나긴 소송 끝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승소했습니다.

전 씨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이제 모든 문제가 끝나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며 “이제야 자식이 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한 것 같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에서 제 아픔을 감싸준 것 같아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대법원 선고를 받고, 아버지가 묻혀 있는 대전 산내 골령골을 찾은 전미경 씨.
대법원 선고를 받고, 아버지가 묻혀 있는 대전 산내 골령골을 찾은 전미경 씨.

하지만 전 씨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가압류까지 건 육군본부와 검찰의 사과는 없었다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측에 입장을 물었습니다.

육군본부 측 영관장교는 취재진에게 문자를 통해 “문의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관련해서 주
소송수행자가 대전고등검찰청으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입장 표명을 거절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앞서 지난 4월 해당 소송에 대해 취재진이 질의한 내용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답변을 거듭 반복한 겁니다.

육군에게 아버지를 잃고 육군에게 소송을 당하고, 육군에게 가압류까지 당한 전 씨. 전 씨는 골령골 앞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골 촌 아낙인 저도 이렇게 치졸한 짓은 안 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방을 책임지는 육군본부나 치안을 책임지는 검찰청이나 이렇게 치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71년 전 벌어진 국가폭력. 그리고 국가폭력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남겨진 유족에 가한 소송.

유족은 2차 가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고통과 상처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전미경 씨는 심지어 소송 충격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금까지 이를 물고 버텼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은 끝났지만, 소송을 제기한 육군과 검찰의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原文出處 KBS NEWS